역대 법인 이사장 목록

​"한국 영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한국 영화인들과 함께하는 한국영화배우협회



법인 2대 이사장 안성기(배우, 탤런트)

다른 이름 : Sung-kee Ahn

출생 일자 : 1952.01.01(대구)

데뷔 작품 : 황혼열차(1957)

최근 작품  

  사냥(2016), 동행(2015), 필름시대사랑(2015), 제 7기사단(2015), 화장(2014) ...

최근 수상  

  2015년 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특별감사패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13년 제49회 백상예술대상 사회공헌상

  2012년 한국영화배우협회 공로상

  2012년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연기상

  2012년 제4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한국의 '국민 배우' 칭호를 받는 대표적인 배우다.


종교는 천주교. 혈액형은 AB형. 서울 돈암 국교, 경동 중학교, 동성 고등학교를 거쳐 외대 베트남어 학과를 졸업했다. 영화 기획과 제작에 종사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글도 배우기 전에 영화에 출연했는데, 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가 첫 출연작이다. 이 영화를 필두로 그는 웬만한 영화의 아역은 도맡아 하였다. 이 가운데 1959년에 <10대의 반항>에 출연해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영화상의 문교부 장관상과 샌프란시스코의 영화상 골든 특별상(아역)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얄개전>을 마지막으로, 아역 배우로서는 은막을 은퇴하였다. 아역으로 출연한 영화는 모두 70여 편에 이른다. 


이후 삼수 끝에 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베트남으로 진출할 뜻을 가지고 있던 그는 POTC를 지원, 임관하면서 참모총장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지만 이미 월남에 패망한 뒤라 전방에서 포병 장교로 군 생활을 마쳤다. 제대 후에는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공부도 쉽지 않아 결국 한 학기 만에 도중하차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1978년 김기영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에 출연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그 뒤에도 <제 3공작>, <야시>, <우요일>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적응하기가 쉽지 않고, 반응 또한 기대 이하였다. 그러나 그의 진짜 재 출발 선언은 대마초 해금 사건으로 돌아온 이장호 감독의 재기작 <바람불어 좋은 날>로 이루어졌다. 특히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계산된 연기와 철저한 사전 준비, 그리고 천부적 재능과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향한 노력은 수많은 영화제의 수상과 함께 국내 톱의 자리에 그를 올려놓았다.


이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와 <안개마을>을 거쳐 같은 세대의 배창호 감독과 콤비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콤비는 8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그 흥행 성적은 매년 톱을 차지하였다. 특히 <고래사냥>과 <깊고 푸른 밤>은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황진이>의 흥행적 참패와 함께 <안녕하세요, 하느님>과 이석기 감독의 <성 이수일뎐>에서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연기로 슬럼프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로 건재함을 과시하였으며, 그의 복귀를 영화계는 수 많은 수상으로 따뜻하게 응원하였다.


82년에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을 찍다가 오소영을 만나 결혼, 두 아들 다빈, 필립을 두었다. 연예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사생활에서도 스캔들 한번 없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그는 겹치기 출연이나 다작은 절대 금물로 여긴다. <남부군>, <하얀 전쟁>, <그 섬에 가고 싶다> 등의 진지한 연기 외에 <개그맨>, <투캅스>에서 보여준 코미디 연기 역시 일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1959년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 특별상을 시작으로 1980, 1982, 1983, 1985, 1990, 1992, 1993, 1995, 2006, 2007년 대종상과, 1982, 1983, 1995, 1996, 2006, 2012, 2015 년 평론가 협회상, 1987, 1992년 아태 영화제상, 한국일보 백상예술대상을 10회 수상했으며(93년 현재), 1990, 1992, 2001, 2006년 조선일보-청룡상을 수상했다.